사단 법당에서 군종사병 교육을 마치고 일단 대대로 복귀를 했다. 하지만 내가 소속된 3중대는 갑자기 대박고개로 파견을 나갔다고 했다. 버스도 끊어지고 날도 저문 시간이었다. 말단 보병에게 두어 시간 걷기는 식은 죽먹기다. 하지만 병들은 어디까지나 "철모르는 얼라"였고 함부로 영외로 나갈 수도 없었다. 거기서 하룻밤 자고 부식차를 타고 중대로 들어오라는 지시였다.
다음날은 일요일 아침을 먹고 나니 할 일도 없었다. 다른 중대에서 복무 중인 동기를 만나서 잠시 잠답을 나누었다. 동기들끼리 만나면 대화의 내용은 뻔하다. 고참들 흉보기 시집살이의 설움이 단골메뉴였다. 상급부대에서 부식을 싣고 예하부대를 순회하는 부식차는 정오쯤에 온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불러서 본부 중대로 갔다.
외출증을 주면서 버스를 타고 복귀하라고 했다. 가는 길에 면회객 2분을 대동하고 오라는 당부도 있었다. 그때 세 중대가 교대로 파견 근무를 나갔는데 주임무는 야간 매복이었다. 김신조 일당이 통과한 길목이라고 들었다. 처음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이며 이등병 시절을 거기서 보내고 삼월에 대대로 복귀를 했었다. 6개월마다 교대를 하니 아직 조금 더 남은 것으로 아는데 대규모 부대 측정을 앞두고 앞당겼다는 후문이었다.
면회소에는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은 모친이고 또 한 사람은 약혼녀였는데 나를 보고 반색을 했다. 송모일병 그러니까 나보다 6개월 후임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아저씨 일병하고 이병 중 누가 더 높아요?
--어머님도 참, 일병이 더 높다고 아까도 말씀 드릿자나유!
--무슨 말이노, 그만 이학년보다 일학년이 더 높다 이말이가?
--일등병 이등병입니다. 일등이 이등보다 높은 것이지요.
--그봐유 어머님, 이제 안심 푹 놓으세유.
--아니 무슨 일 있었습니까?
--긍께 큰 사고를 내만 계급이 내리간다고 버스에서 만난 군인 아저씨가 캤어요
--아참, 아저씨는 계급이 머예유?
--상병입니다.
--그만 삼등병이네유!
--그렁께 일등병 미테 이등병 그 다메 삼등병이구만!
--까마득하네유
대박 고개를 오르기 전 버스에서 내리면 우리 중대 막사까지는 걸어서 삼사분 걸린다. 위병소 옆에는 작은 규모의 상점이 있었다. 주로 그곳에서 면회도 하고 하룻밤 묵어 가기도 했다. 송일병은 버스 정류장(주변에 민가도 없어서 우리 중대원만 이용했지만)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먼저 내린 약혼녀를 안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내가 내리자 그녀가 송일병보고 한 마디 했다.
--자기야 임삼등병님 잘 봐주라!
--그래, 졸병이라고 개롭히지 말고! 아주 착한 사람잉께.
--필승! 임상병님 교육잘 받으시고 오셨습니까!
--응, 그동안 수고 많았지! 면회 잘하고 천천히 들어와!
이 상황을 목도한 두 여인의 표정이 어떠했을까? 각자 상상에 맡긴다. 나도 안 봐서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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