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일상

그날 나는 백점

임재수 2024. 1. 20. 19:31
그날 나는 백점 맞았습니다.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서 저는 수험생이 되고 제자들이 채점 위원이 되어서 시험을 치룬 결과입니다.
삼십여년 만의 만남 참으로 가슴 설레는 사건이었습니다. 철부지 코흘리게 시절 설이나 추석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바로 그 심정이었습니다. 중동중학교 13회 졸업생 십 수명이 8월31일 토요일 문경 새재 등산을 하는데 나올 수 있느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조상님들의 산소에 벌초를 하기 위해서 많은 손님이 우리집에 모이는 날이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사정이야기를 하고 처음에는 사양을 했습니다. 그래도 뭔가 아쉬어 함께 등산은 못해도 산에 오르기 전 잠시 만나서 얼굴만이라도 보고 오자는 생각을 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학생들은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만나면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하고 시험하러 듭니다. 이번에도 만나면 틀림없이 그렇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있고 있었던 졸업앨범을 찾아서 얼굴을 들여다 보며 기억을 되살려 봤습니다. 그런데 130여명이나 되는 졸업생, 그리고 삼십여년의 세월의 공백 도저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행사를 주관하는 주00군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참석히기로 예장된 명단을 빼냈습니다. 아니 사진까지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틈나는대로 앨범 사진과 대조해 가면서 이름을 익히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토요일 오전 9시 문경새재 주자창 근처 선비상 옆에서 만났습니다.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이팔 청춘의 소년 소녀들의 이제는 그 때의 자신들만한 자녀를 둔 중년의 아저씨(아주머니)가 되어서 나타났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난 뒤 예상대로 구두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 저 누구게요”
한 사람이 시작하자 연이어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하나씩하나씩 열다섯 명의 이름을 모두 맞추었습니다.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머리가 좋아야 선생님하지 아무나 하나”등의 말도 있었습니다.
“선생님 오시기 전에 앨범 봤지요?”
“그럼, 내가 무슨 천재라고 다 기억하나?”
준비해온 간식을 같이 먹으면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아쉽지만 헤어졌습니다.
얘들아 사실 앨범만 본 것이 아니고 엄청난 시험 부정이 있었다. 참으로 반갑고 고마웠다. 나는 자네들에게 또하나의 훈장을 받았다. (2013.9.2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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