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더불어

초군소탕

임재수 2025. 7. 4. 13:31

예초기를 매고 고사리 밭으로 나갔다. 고사리 수확은 5월말까지만 하기로 합의를 봤었다. "모든 것을 미루기만 하던 아가 참 신통하다?" 엄마가 계셨으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 전에 옆사람이 알뜰하게 고사리를 꺾었으니 눈치 볼 일도 조심할 것도 없었다. 첫날은 70여분 하고 끝냈다. 그 정도가 체력의 한계였다.

다음날도 예초기 매고 나갔다. 조금 돌리다 보니 탐스러운 고사리가 제법 눈에 들어 왔다. 이틀 지났으니 다시 수확 적기가 되었던 것이다. 망설이다가 연락을 취했다. 준비하고 기다리셨던 것처럼 즉시  달려와서 꺾기 시작하셨다. 그 뒤를 따라가면서 예초기를 돌렸다. 다음날은 선거일 선거관리위원으로 복무하기 위해서 하루를 쉬었다.

4일은 조금밖에 못하고 5일날 나갔다가 또다시 난처한 상황을 만났다. 알맞게 자라서 꺾고 싶은 것도 있고, 수확시기를 넘긴 것도 많았다. '옆사람 불러서 다시 꺾어?' '저거 얼마나 된다고!' '잎이 팬 것은 어쩌고?' '저것도 내년을 위해서 잘 돌봐 줘야 하는 거야' 그런 고민을 하다가 그냥 밀어 버리고 말았다. '속도가 완벽함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 '방거치가 별 수 있나' 이런 구실을 찾았다.

황송하옵게도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내가 받아온 수당을 상납했으니 그 돈으로 사온 안주일 것이다. 하지만 심증은 가는데 물증은 없다. 내외가 마주 앉아서 주거니 받거니 잔이 오고 갔다.

그 때 갑자기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아부지 : 머 잘했다고 술이냐?
엄마 : 가만히 좀 기시요! 사날 고생했엉깨 한잔 할 만~
아부지 : 이 사진 좀 보라구, 멀쩡한 고사리 몽땅~
엄마 : 저~ 증말이냐?
나 : 풀과 고사리가 엉키가이고~
엄마 : 그만 호매이로 매덩가 뽑등가 해야지~
나 : 일을 하다보만 고시라고 곡식이고  항개도 안다치고 우째 ~
아부지 : 그~그걸 말이라고 하냐? 시방!
영0 : 오빠야, 밭매다가 실수로 한피기만 발바도 눈물이 쑥빠지게 우리는 혼났다.

화장실 가서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한 것 같기도 했다. 종아리를 걷고 나오니 아무도 없었다. 찾으러 나왔다가 담밑에 쭈그리고 앉아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그때 윤식이라는 사람이 다가 왔다. 
윤식 : 잡초들은 무자비하게 잘라 버려야 하는거야.
나 : 응, 그런데 그카다가 고사리마저 잘라서~
윤식 : 혼나는기 겁나만 잘린 고사리 풀로 덮어 두거나~
나 : 말도 안대~
윤식 : 초군들은 빨갱이고 그들하고 이웃해서 사는 것들은 빨갱이 물이 들었응께 그냥 고사리가 아니야. 다른 고사리를 위해서~
나 : 도~도대체 무신 말 하는거요?
00 :  그놈아  개엄하다 쫓기난 놈이니 절대로 그놈 말 듣지 말거래이! 아예 상종도 하만 안댄다

0604(작업중)
0605-고민중
0601(첫날작업-6월2일 촬영)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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