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들어야 하는데
가족과더불어
2020-07-14 15:02:14
노골적인 사람 차별에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서른 아홉이니 된 놈이 그러면 안 된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따끔하게 혼이라도 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 봐야 나만 더 우스운 꼴이 된다는 생각에 그만 두기로 했다. 텔레비젼을 켜고 여기 저기 채널을 돌렸지만 별로 볼 것이 없었다. 아홉시가 좀 넘은 시간에 들깨 모종을 하려고 호미를 들고 뒤뜰 논으로 갔다. 구름이 잔뜩 낀 날이라 덥지도 않은 것이 딱 일하기 좋았다. 게다가 예보대로 밤늦게 비가 내린다면 잘 살아 붙을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때는 없지 싶었다.
모판에 씨앗을 넣고 싹틔운 것이라 노지에 낸 것보다 심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모판을 들고 다니면서 흙덩이째 쏙쏙 뽑아서 심는 고추 이식을 연상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가로 세로 각 한치도 안 되는 칸에 5~6포기 정도가 빽빽하게 나 있었다. 그것을 두 포기씩 분리해서 심어야 했다. 큰 것은 한뼘 정도 되고 3cm 도 안 되는 어린 것도 있었다. 옮겨 심어 놓으면 어린 것이 생존율이 더 높은 것은 확실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아서 다루기가 영 어려웠다.
길이가 적당한 것은 키만 자랐지 줄기가 너무 허약했다. 이게 제대로 자랄까 미심쩍은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심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지매가 혀를 끌끌 차면서 밭으로 내려 오셨다. 호미를 달라고 하시더니 시범을 보이셨다. 호미 옆면으로 슬쩍 내려치니 비닐이 길게 찢어지며 땅도 길게 파였다. 거기다 두포기의 길다란 모종을 눞여 놓고 흙으로 덮었다. 긴 것은 줄기의 대부분이 묻히고 일부분과 잎이 달린 끝부분만 밖으로 나왔다. 키가 아주 작은 것만 똑바로 세워서 심었다. 비슷한 것끼리 짝을 맞추어 심었지만 부득이 크고 작은 것을 같이 심을 때는 밖으로 보이는 부분의 끝을 맞추어야 한다고 했다.
아지매가 가시고 난 뒤에 혼자 심다가 생각이 들었다. 포기를 분리하다 보면 잔뿌리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두 포기 붙은 것들 중 키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은 분리하지 않았고 끝도 맞추지 않고 그냥 심었다. 열두시 조금 지난 시간 네 골 조금 더 남았는데 점심 먹으라는 연락이 왔다. 차별할 때와는 달리 애교가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점심 먹고 나서 상전 일행은 저들 집으로 갔다. 배웅을 하고 난 뒤 나머지를 모두 끝내자고 하면서 내외가 같이 나왔다. 시작한 후 조금밖에 안 지났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비가 하나 밖에 없어서 내가 입고 옆사람은 하우스 안에서 풀을 맸다. 두 골 정도 남았을 때 빗방울이 더 굵어졌다. 집으로 들어가도 된다는 명이 떨어졌다. 먼저 들어와서 씻고 난뒤 동기들과 단톡방에서 고사성어 비틀기 놀이를 했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운우지락"으로 표현했다.
그것도 일이라고 피곤했던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밖이 어수선해서 내다 보니 상전의 친할아버지가 오셨다. 방으로 모시고 수인사를 하고 난 뒤에 아침에 있었던 서운한 감정을 좀 부풀려서 일러 바쳤다.
"아 그놈이 사라믈 은그니 차별을 하지 머예요"
"예 무슨?"
"글쎄 누구 보곤 저하고 같이 놀자하고 나한테는 이 삼복더위에 들에 가라고 하니 기가 차네유? "
"ㅎㅎ 해학이 넘치는구먼유!"
"해학이 아니어유"
"철 모르는 기 뭘 알게써요"
"서른 아홉이나 대써니 철들때도 댄는데"
"아니 농담이 아니고 시방 진심이네유 어쩌면 항갑지난 분이 예닐곱살 때 하고 똑 같수?"
"갑자기 무신말씀?"
"나도 다 알지유 시살 아래 사촌 동생하고 삐구아서 홍시 안줄라 카다 할매 잡수는 거도 말리다가 귀싸대기 얻어 마자짜나!"
"고래 나매 아픈 곳을 찌르만 안대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우째 아시유 그리고 이~이제는 반말까지 하시네"
"어이구 이것아 친손자나 이손자나 매 항가진데 시방 누가 누구한테 일러바치노!"
이상해서 둘러 보니 사돈은 안 보이고 아부지 엄마만 옆에 계셨다.
"어?"
"그런데 니 올개 및이노?"
"스물 한살입니다."
"니 딸래미는?"
"그렁께 어~ 서른 다섯 살입니다."
"그런데 아가 우째 서런 아홉 살이냐?"
"서른 아홉 사리 아니구요 서른 아홉달 다 대 가유"
"어이구 그러니까 니살 먹은 손자하고 싸왓구나!"
"싸우다니요.! 방아깨비 자바서 빙에 너어 주고 손잡고 댕기면서 노라써요. 어재도 놀아 주고 오늘 아치메도~"
"항갑 지낸 기 우째 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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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 구름낀 오전에는 시원해서 일하기 좋았고
우 : 비가 내리는 오후에는 일하지 않아도 되지
지 : 지화자 좋을시고
락 : 즐거운 오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