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더불어

물통을 비우다

임재수 2022. 11. 4. 19:03

물통을 비우다

땅과더불어

2020-12-13 00:19:34


무슨 일이든 미리미리 해 두어야 한다는 옛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다. 요즘 농사일을 하다 보니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예외는 항상 있는 법이다. 이렇게 쓰는 중에 니가 농사를 얼마나 아는데?”하고 어디선가 비알밭 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오래 전에 받아 두었던 물을 이틀에 걸쳐서 옮기고 버렸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움직이던 내가 모처럼 잘 한다고 했더니 이 모양이다. 고정 설치된 큰 통(5톤 용량)에는 2/3 정도의 물이 남아 있었는데 비워야만 했다. 동파도 걱정이지만 최악의 상황은 면하더라도 출구가 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500L 그리고 350L 통은 하우스 안으로 옮겨 두면 겨울에도 사용하겠지만 그냥은 옮길 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두 통을 먼저 비워서 옮기고 다시 채운 뒤 큰 통에 남는 물은 버리기로 했다.

500L 물통을 비우려고 기울여 봤지만 어림도 없는 짓이었다. 여기저기 뒤져서 2m 정도의 고무 관(직경1cm정도)을 찾아냈다. 물을 가득 담아서 안팎으로 걸쳐 놓으니 물이 잘도 빠져 나갔다. 기다리는 동안 잠시 다른 일을 살피다 보니 물이 나오지 않았다. 물속에 잠겼던 부분이 떠오르면서 관에 물이 비었던 탓이었다. 그래서 한쪽 끝에 돌을 매달아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관속에 물을 가득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통의 높이와 물의 높이가 비슷해서 대충 채워도 잘 넘어 갔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이 잘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성급한 탓이었다. 돌 달린 저쪽 끝이 바닥 가까이 잠겨 있으니 이쪽 끝의 높이를 물에 안 잠길 만큼만 낮추면 서서히 물이 차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성급하게 이쪽 끝마저 물 속으로 밀어 넣었으니 공기가 잘 안 빠지고 물이 차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럭저럭 비운 통을 안으로 옮기고 다시 물을 채우는데 시내 갔던 옆 사람이 왔다. 버려야 할 물이 아깝다고 집에 가서 통이란 통은 다 챙겨 와서 받았다

그래도 많은 양의 물이 남아서 오늘 버렸다. 모터펌퍼에 연결된 액비주입구를 열고 연결된 관을 하우스 밖으로 내 놓고 물을 흘렸다. 남은 물의 양이 적당한 시점에 스프링쿨러를 작동해서 채소에 물을 주고 끝냈다. 물통 밑바닥이나 연결된 관이 액비 주입구보다 낮아서 동력에 기대지 않고는 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기 때문에 먼저 버리고 나중에 살수했던 것이다.

 

--물 퍼니라고 전기 딸쿠고
--요새는 사람 심가이고는 못해요
--나만거 버린다고 또 전기~
--마지막에는 나물한테 준기지 버린거 아이라요

--그렁께 씰데 읍시 마이 바다가이고

--전기세 그거 얼마 안대요 일년치 다 음쳐바야~

갑자기 싸늘해지는 그분의 눈초리에 그만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500L 물통 350L 물통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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