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 풀을 깎으면서
땅과더불어
2018-06-28 22:30:38
엄마 : 그 노니 어떤 노닌가 하만 분재 받은 거 말하자면 시전지물이지. 동네에서 젤로 가는 일등상다비라 이 마리다. 임진년인가 지도칸 가뭄이 드런는데 다리는 모 한피기 꼬바 보지도 모탠는데 그 노는 도루 풍년이 드러찌.
나 : 갑자기 무신 말씀?
엄마 : 그런데 그 노는 왜 무키느냐고
나 : 무키는거 아인데
엄마 : 다른 지베선 벌써 모심기 끈낸는데 논도 안 가라 노코. 또 풀은 그기 머꼬?
나 : 들깨 심을거라요. 로타리 치만 풀이 땅 밑에 다 무치거등요.
엄마 : 멀쩡한 노네 들깨를 심는다고? ㅉㅉ 그럼 로타리라도 빨리 치등가. “친환경인가 먼가 하다가 비러 먹기 십상”이라고 동네 사람들 비알밭 매드라
나 : 이제 세상이 바끼뿌린는 걸요. 쌀이 남아서 골치라고 정부에서 다른 농사 지이만 보조금도 주거등요. 비가 자꾸 와 가이고 질어서 못 친다고 마르기만 기다리는 중이라요. 일등상답은 이전 말이고 이제는 천덕구러기 논이라요
아부지 : 머라꼬? 천덕꾸러기라? 우리 동네 땅 한때기 모타고난 사람 천지비까리다. 그 땅 덕분에 니들 배 골치 안코 자랐고 학교 댕긴는데. 함부로 입 놀리만~
나 : 지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아부지 : 그리고 사까래 들고 나가서 도구라도 쳐야 물이 빠지지 하눌만 치다바? 풀이 무성하여 그늘이 지는데 논이 잘 마리까? 예초기는 사 노코 머새 쓸라고?
나 : 야? 그런 걸 진작 갈구치 주시지 왜 이제사?
아부지 : ㅉㅉ 남들 우째 하는가 잘 바야지. 그래도 모리만 물어 보기도 하고. 학교서는 맨날 질문하라고 재촉해 노코
오늘도 예초기를 매고 논으로 나갔습니다. 사흘째 풀을 깎았습니다. 이장님이 로타리를 쳐 주기로 되어 있는데 비가 너무 자주 내려서 아직까지 못하고 있습니다. 논물 빼기 위해 도구를 쳐 두었는데(두어주 전쯤?) 효과가 어떤지 확인차 사흘 전에 나가 봤습니다. 어느 정도 말랐는지 로타리를 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판단이 서지를 않았습니다. 마침 근처에 있던 지도자님한테 물어 봤더니 풀을 깎아주면 훨씬 빨리 마를 거라고 했습니다. 제대로 마르지 않은 논에 로타리 작업을 하면 부서지지 않은 흙덩어리가 많아서 다음 작업에 지장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걸 왜 이제야 가르쳐 주느냐"고 농담을 하면서 자책도 했습니다.
예초기를 다루는 일이 많이 위험합니다. 그래서 칼날 밑에 안전 판(날개?)를 추가로 달았습니다. 그래서 돌이 튀거나 바위에 칼날이 부딪치는 등의 사고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무게가 더 나가서 오른 팔에 부담이 갑니다. 무성한 개망초 줄기나 칡덩굴 등이 안전판과 회전 칼날 사이에 엉키면서 멈추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씨씨오일을 섞어서 사용하는 휘발유 엔진은 관리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고 작년에는 부탄가스용 예초기도 샀습니다. 시동이 잘 걸리고 관리가 편하기는 했습니다. 엔진 자체도 그랬지만 안전판 달지 않고 칼날도 접히는 것으로 달았더니 확실히 가벼웠습니다. 하지만 등에 지는 것이 아니고 어깨에 걸고 사용하는 것이라 가볍다는 효과는 반감되고 말았습니다.
좀 넓고 평평한 곳에서 하는 작업은 서투른 목수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V자로 파여서 길게 이어진 고랑에서 작업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접히는 칼날을 사용해 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칼날 대신에 끈을 사용하는 예초기를 사용하면 좋다고 했습니다.
“솜씨가 없는 내가 연장 바꾸어 봐야 그게 그거 아니겠어”
그냥 포기하고 고랑에서는 낫으로 호미로 작업했습니다. 작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예초기를 은척 장날 싣고 나갔습니다. 15,000원 주고 끈으로 바꾸어 달았습니다.
‘세상에 머 이런기 있노!‘
혼자서 무릎을 치면서 <서투른 목수 연장만 나무란다>는 우리말 속담을 <서투른 목수는 좋은 연장이 있는 줄도 모른다>로 바꾸어야 한다고 이 연사 힘차게 힘차게 ㅋ~~~
*시전지물=세전지물
페이스북 (2018. 5.31) 카카오스토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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