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비결
추억과더불어
2018-07-12 23:21:38
어린 시절 “싸움의 비결”이란 것이 있고 그것만 배우면 하루아침에 고수가 되는 것으로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 오랜 시간을 요하는 수련의 과정이나 뼈를 깎는 고통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동화 속 요술사처럼 비법을 아는 사람이 있고 그에게서 배우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그 무렵 우리 마을에 사범이란 사람이 나타났다. 우리는 매일 아침 동네의 어느 빈 집에 모여서 놀다가 함께 학교로 가곤 했다, 어느 날 아침 그 집 천장이 뻥 뚫려 있었다. 사범이란 사람이 어제 저녁 발로 차서 생긴 구멍이라고 했다. “동네 장정 여러 명이 한꺼번에 덤볐는데 당하지 못했다.” “하늘을 펄펄 날더라.” “고개 넘어 어딘가에 가면 싸움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다.” “사범은 거기서 싸움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다” 등의 믿지 못할 신비로운 말들이 우리 꼬맹이들 사이에 떠돌았다. 나도 그곳에 가서 ‘싸움’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00와 싸워서 이겨 보고 싶었고, 내 키보다 높은 곳을 발로 차서 친구들에게 뽐내 보고 싶었다. 그곳에 가서 돈만 내면, 신비로운 싸움의 기술만 전수 받으면 모든 것이 저절로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곳이 가까운 곳도 아니고, 그 싸움의 비결을 배우는 데는 아마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는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몇 년 후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유도를 배운다고 했다. 들뜬 마음으로 잔뜩 기대를 했다. 물론 그 때처럼 비결만 배우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많은 시간과 고통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이제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공짜로 가르쳐 준다는데 얼마나 좋은 기회냐. 아무리 힘들어도, 어떠한 고통도 참고 이겨 내리라. 그래서 싸워서 이기지 못했던 설움을 씻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그 막연한 기대는 첫 시간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고통스러워도 참아야 한다고 각오는 했지만, 이 정도로 힘이 들 줄은 정말로 몰랐다. 매트에 닿지 않게 머리를 들고 있는 것도 무척 힘들었고, 매트 위에 부딪치는 팔과 다리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열심히 배워 남을 이겨 보겠다는 생각은 깡그리 사라지고, 오늘 또 한 시간을 한 시간을 어떻게 견딜까 그것만이 걱정이 되었다. 유도 시간은 공포의 시간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나 제대로 배운다는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유도 시간이었다.
거의 매일 보충 수업 시간에 도망치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있었다. 담임이던 내가 벌을 주면 “대학도 안 가는데 보충 수업은 왜 해요”라고 항변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는 전기 대학 시험 칠 쯤 실습 겸 취업을 나갔다.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1년 후 그가 전화를 했다. 대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고 했다. 이미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던 나는 전화로 상담을 하고 끝냈다.
그렇다. 이 세상 모든 일이 다 어렵다. 공부든 운동이든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 음악도 미술도 모든 것이 다 그렇다. 그런데도 00학습지로 공부하면 저절로 실력이 올라 갈 것 같이 말하는 광고가 있다. 공부하기에 짜증이 날 때는 오전 수업만 하는 운동부 학생이 부러울 것이다. 무능하다고 질책 당한 회사원은 귀농을 꿈꿀 터이고, 까다로운 손님과 한바탕 싸운 음식점 주인은 내 아들만은 공무원을 시키겠다고 다짐한다. 세상 사람들의 이런 착각을 조선 중기의 문인이었던 장만은 이렇게 표현했다.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 양장이 물보다 어렵구나
이 후론 배도 말도 말고 밭 갈기만 하리라”
쉽기만 한 일은 어디에도 있겠는가?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을 위해 누가 월급을 주겠는가. 남이 하기 싫어 하는 일, 어려워서 남이 할 수 없는 일이야 말로 더욱 가치 있는 일이다.
※구절양장(九折羊腸) : 아홉 번 꼬부라진 양의 창자라는 뜻으로, 꼬불꼬불하며 험한 산길을 이르는 말
중모중고교지(2012년), 페이스북(2013.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