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벌을 해서 교실을 지은 사연
추억과더불어
2018-06-30 13:23:14
그 옛날 우리는 단체로 도둑질하러 갔습니다. 그것도 선생님과 함께.
우리학교는 세상에서 제일 오지에 있는 작은 분교였습니다. 이때까지는 교실 두간에 선생님 두분이 계셨고 4개 학년만 있었습니다. 5학년이 되면 20여리 밖에 있는 본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으니, 4년만 다니고 학교를 그만 둔 선배들도 있었습니다.(4학년도 못 못다닌 사람도 있었지만) 1개학년 수업 중이면 다른 학년은 1시간 동안 밖에서 뛰어 노는 복식 수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3월 초 본교에서 5학년을 마친 분교 출신 6학년 선배들이 다시 분교로 쫓겨 왔습니다. 그리고 5학년이 된 선배들도 본교로 가지 않고 분교에 남게 되었고 선생님도 한 분 더 부임해 오셨지요. 그래서 교실을 한 간 더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라 형편도 어려웠던지 아니면 시골 동네라고 무시했는지 “너희들끼리 알아서 지어라”였던 것 같습니다. 터 닦고 기둥 세우고 등등 모든 일이 주민들의 부역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어느 날 상급생 모두 운동장에 모였습니다. 선생님과 일하시는 학교 아저씨께서 앞장을 서시고 상급생 사내 아이들(그래 봐야 초등 4,5,6학년 꼬맹이 들이지만)은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울창한 숲 속에 들어가서 선생님들과 학교 아저씨는 톱으로 베고 도끼(낫)으로 다듬고 우리는 잠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저쪽 산 밑에서 벽력 같은 고함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선생님들께서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며 담배를 빼어 물었고 우리들도 잔뜩 긴장해서 기다렸습다(사실 그때만해도 “도벌”의 의미도 몰랐지만)
잠시 후 나타난 사람은 스님이었습니다. 그 산이 인근 사찰 소유의 산이었던 것입니다. 나타난 스님께 선생님들께서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평소 근엄하시던 선생님들께서 어쩌면 그렇게 공손하셨던지). 선생님들이 학생들 데리고 교실 지으려고 나무 베러 온 현실을 목도하신 스님께서도 기가 막힌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잠시 동안 서로 신세 한탄이 오고 갔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교실을 직접 나서서 지어야 했던 학교의 딱한 사정을 말씀하셨던 것 같고, 스님께서는 얼마 전에 나쁜 사람들이 대량으로 나무를 베어갔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쨌던 서슬 퍼렇게 나타났던 스님(산주)께서는 그냥 내려 가셨고 우리는 어른들이 베어 준 어른 팔뚝 정도의 긴 소나무를 둘이서 하나씩 메고 산을 내려 왔습니다.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아마 서까래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얼마 후 교실 한 칸이 마련되었습니다. 그 교실은 마루도 깔지 않은 흙 바닥이어서 먼지가 풀풀 나는 교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분교가 독립하면서 부지를 새로 마련하고 건물로 새로 지어 이사를 갔습니다. 우여 곡절 끝에 지은 건물을 2년밖에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새로 지은 학교는 참으로 깨끗했고 우리 학생들의 손을 빌리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사십 몇년이 흘렀습니다. 우리가 지은 건물도 새로 지은 최신 건물도 다 사라졌습니다. 대다수의 선생님들께서 기피하셨던 궁벽한 산골에 오셔서 고생만 하셨던 선생님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페이스북(2012.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