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더불어

벌청소는 대신하는게 아니다

임재수 2022. 11. 4. 16:51

벌청소는 대신하는게 아니다

땅과더불어

2018-07-19 16:57:55


어제는 좀 마셨다. 양산 사는 친구 그리고 상주 사는 친구가 찾아 왔기 때문이다. 둘은 모두 고향 친구이다. 한 사람은 아재도 되고 또 한 사람은 할배도 된다. 두 친구와 다른 동네 사람이 함께 민물고기를 잡아 왔다. 그 시간에 나는 동네 아지매들 모시고 문병차 상주시내를 다녀왔다. 그래서 천렵에는 동참 하지 못했다. 도중에 은척 농협에서 간단하게 장을 보아 왔다. 잡아온 민물고기 배를 따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매운탕을 끓여 온 동네 사람이 저녁을 함께 하면서 마셨다. 그리고 저녁에는 동양화 감상 단체전 경기가 벌어졌다. 나는 민물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어울리면 분위기를 마신다. 그러다 보니 조금 과음한 것이었다.

안약 넣을 시간이라고 아침 다섯 시 반에 알람이 울렸다. 하지만 무시하고 계속 잠만 잤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아버님의 낮으막하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머하노”
“어제 저녁에 좀 마셨더니~”
“꼴 좋다. 공부하는 놈이 ㅉㅉ”
“사람이 살다 보면~”
“그래 할라만 학교고 공부고 때리치아뿌라. 부모 등골만 빼지 말고”
하는 수 없이 일어났다. 세수를 대충하고 넘어 가지도 않는 아침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아버님이 다시 말씀하신다.
“오늘은 뒤뜰 논둑이나 깎아라.”
“야!”
“오늘 중으로 다 해 놓거라”
“알았어요”
은근히 짜증이 났지만 꾹 참고 대답을 했다.
“농사군들이 얼매나 힘들게 사는지 일하민서 느끼 봐라”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셨다.

이래저래 입맛이 없던 나는 그만 밥숟가락을 놓았다. 그리고 낫을 찾아 숫돌에 갈았다. 뒤뜰 논으로 갔다. 논둑을 깎기 시작했다. 앞둑 중간중간에 콩이 자라고 있다. 잘 못하면 콩을 자를 수도 있다. 그러니 영 진도가 안 나간다. 그놈의 피하고 벼하고 구분도 잘 안 된다. 피라고 자르고 보면 나락이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니까 니는 농사 짓다가는 빌어먹기 십상이여. 명심하고 공부나 빡시게 하란 말이지”
저놈의 논둑을 언제 다 깎을라나.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땀은 비 오듯 하고 목은 마르고 귓밥 근처 뭐가 물었는지 가렵다.

갑자기 전화가 울린다. 받아 보니 시내 사는 항0 목소리다.
“칠성아 오늘 놀러 가자”
“그럴 기분 아이거등”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어쩐다는 말이 있다. 나는 애꿎은 친구에게 화풀이만하고 그냥 끊었다. 
‘망할 것들 사람 바빠 죽겠는데 전화하고 지0이야’
그리고 담배 한 개피 꺼내서 불을 붙이려고 하는데 저쪽에서 경적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 논 입구에 화물차가 한 대 멈춰 섰다. 내리는 것 보니 친구들이다. 전화를 했던 친구 포함해서 셋이다.
“칠성아 놀러 가자”
“안 돼, 이 논둑 다 깎기 전에는”
“오늘 문경 새재에 서울 동기들 온다고 했는데”
“이거 다 못하면 학교도 댕기지 말라신다.”
“어이구 칠성아 어른들은 다 그 캐여!”
“맞아 항갑 지낸 놈이 그 말을 믿나 순진하긴”
“어제도 동네 친구들하고 술을 잔뜩 마셨는데”
그러자 일0이가 한마디 한다.
“야 뭐 이렁거 가이고 그러나? 병0이 이리 온나”
둘이서 차로 가더니 예초기와 갈퀴하나 그리고 낫 한 자루 더 가져 온다.
“내가 뒷둑 갂을 테니 항0는 갈퀴로 끌어 내고 칠성이하고 병0이는 나락 가까이 있는 풀하고 피를 잘라라”
우리 논둑이 높아서 풀이 엄청 많았는데 정말로 순식간에 끝이 났다. 대충 씻고 옷갈아 입고 따라 나섰다. 
문경 새재 가니 서울 동기들이 엄청 많이 와 있었다. 반가운 얼굴도 있었고 졸업한 지 처음 보는 친구도 많았다. 이 사람과 한잔 또 다른 사람과 한잔 주고 받다보니 엄청 많이 마셨다.

그리고 비틀비틀 집으로 들어섰다. 문을 여는 순간 아버님이 회초리를 들고 기다리고 계셨다.
“종아리 걷어라”
“논둑 다 깎고 놀았습니다.”
“네가 선생 맞나?”
“예!”
“아이들 벌청소 시키는거 대신하기 있더냐”
“잘 못했습니다.”
“힘들어도 혼자서 깎아 란 말은 다 이유가 있단 말이다.”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나는 종아리를 걷었다. 여전히 하나도 안 아프다. 다섯인지 여섯인지 다 맞고 난 뒤에 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 조용히 여쭈었다.
“학교는 계속 댕기도 되겠니까?”
“-----”
“아니 졸업도 얼마 안남았는데”
여전히 대답이 없으시다.
“나보고 농사 지을 놈이 아니라 하셔 놓고 엉엉”

전화 소리가 울렸다. 받아 보니 범0였다. 회관에서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성주봉에서 사우나 하고 간다고 했다. 재미 있게 놀았다고 고맙다고 했다. 끊고 나서 생각하니 아침은 제대로 먹었는지 대접도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못했다.

오늘도 논으로 갔다. 작년처럼 나락인지 피인지 구분할 것도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냥 싹 뽑으면 된다. 왜냐하면 올해는 논에다 들깨를 심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로 빽빽하게 솟아오르는 것들이 처음에는 피라고 생각했다. 심지도 않은 나락이 그렇게 많이 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며칠 전 뽑기 시작하면서 가까이서 보니까 나락이 대부분이고 피는 듬성듬성 섞여 있을 정도였다. 논이라서 비가 오고 난 뒤에는 질어서 발이 빠져서 힘들었다. 물기가 조금 마르고 나니 뿌리가 잘 뽑히지 않고 끊어진다.

지나 가시던 분이 또 한마디 하신다.
“약을 쳐야해, 그 풀 어째 다 맬라고?”
“내년에 친환경 인증 받으려고요”
며칠 전에도 나눈 대화다. 뇌수술을 받으신지 1년 정도 지나신 집안 아지매 되시는 분이다. 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최근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신다. 
“멀쩡한 논을 밭을 맹글어 가이고 ㅉㅉ”
“아지매 요새는 쌀이 제일 싸여”
“그래도 그렇지”
“나락 농사 짓지 마라고 나라에서 보조금도 주능걸"
“올 갈게는 다시 논으로 맹글어”
아지매는 여전히 삼십년 전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가치를 판단하시는 모양이다.

작년까지 키우려고 애썼던 나락을 뽑아 버리는 일을 요즘 하고 있다. 비는 자주 오고 논이었던 들깨 밭에 빗물이 고여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니 올해 들깨 제대로 수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최선을 다해서 일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페이스북(2017. 7.23)에 실린것 사진과 함께 보기     카카오스토리(2017.7.23)에 올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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