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더불어

농사일과 이웃사이에서

임재수 2022. 11. 4. 17:37

농사일과 이웃사이에서

땅과더불어

2019-04-16 14:42:15


진달래 살구꽃은 곳곳에 피어 있고

다정한 이웃들이 잔 들고 권하는데

농사일 급하다 한들 안 마시고 어이리!


그날 아침 본방사수하려고 했다. 서울에 사시는 지인께서 텔레비전에 출연하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페이스북에 올린 내 글에 가끔 댓글도 달아주시는 분이다. 고명한 저자께서 직접 서명한 책을 받아서 옆사람에게 자랑한 것이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 때 보인 반응을 그냥 시커둥한 정도였다. 
이번에 자상파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함께 보면서 목에 힘좀 줄 생각이었다. 그러고 나면 아마도 나를 달리 볼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재색을 겸비하시고 나이도 열 살정도 젊으니 약발을 받으리라는 추측이었다.

 

그런데 9시 40분이라는 그놈이 시간이 문제였다. 며칠 전까지 제법 추웠던 것 같은데 벌써 낮이면 덥다. 그래서 일찍 나가서 하고 들어 와야 한다고 하셨다. 까짓것 오늘 하루 쉬고 내일 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논에서 나온 돌을 골라서 여기저기 모아 두었는데 빨리 치워야 로타리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장비를 몰고 작업을 하시는 분이 위(다른 집 밭)에서 해 내려 오는데 곧 우리 차례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들에 갈 채비를 했다.

 

그 때 맡겨둔 인감이 필요하다는 전화가 왔다. 옆 사람은 논으로 바로 가고 나는 인감을 가지고 나갔다. 전달하고 나오려 하는데 소주 한잔 하고 가라고  모여 계신 이웃들께서 잡으셨다. 일이 급하다고 그냥 나오려다 잠시 머물렀다.  농사일이 아무리 급하다고 한들 매정하게 뿌리치면 도리가 아니지 싶었다. 석잔만 마시려다 조금 남은 막잔까지 마시고 들로 갔다.


작년에 논배미를 합해서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할 때 큰 돌은 전부 묻었다. 그런데 1차 로타리 작업을 하면서 작은 돌이 좀 드러났다. 전날부터 옆사람이 모아둔 그 돌들을 작은 상자에 담아서 손수레(이것을 우리는 똥구루마라고 함)에 얹어 옮겼다. 지난 겨울에 매설한 수로관과 윗둑 사이의 공간에 흩어 쌓았다. 바람이 엄청 심하게 불었다. 이런 날씨에 절대로 불장난은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마을 영농 공동작업 관련 상의가 있다는 연락이었다. 아침도 먹기 않고 급히 달려갔다. 상의가 끝나고 돌아오니 콧물이 흐른다. 아침 날씨가 쌀쌀했던 탓인지 어제 돌 작업이 무리였던 탓인지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니고 연식이 오래된 탓이여! 반품할 곳도 없으니 ㅉㅉ'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뭐 이런 말씀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 핑계로 또 하루 쉬려고 했다.

평소에는 텔레비젼을 잘 안 보는데 어제 놓친 그분이 출연한 <그녀들의 여유만만>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틀어 봤다. 그런데 그분이 나왔다. 방송시간이 어제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문상가려고 준비하는 사장님을 불러서 급히 봤다. '시장에 가면 재료를 파시는 분이 조리법까지 다 가르쳐 주신다'고 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가르치려고 욕심내지 않는 것이 참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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