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더불어

아랫집의 내력(3)_그리고 우리 집을

임재수 2022. 11. 4. 17:13

아랫집의 내력(3)_그리고 우리 집을

집과더불어

2019-01-20 09:07:31


임진년 사월에 조립식 판넬집을 철거하고 새로 지었으니 십오년이 지난 후였다. 벽체 밖으로 벽돌을 쌓아서 보온 단열 시공만 하자는 생각도 해 봤다. 그러나 기초가 낮아서 습기가 올라오고 배수관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결단을 내렸다. 
 
새집을 짓는 과정에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건축법에 대한 무지(신고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일정한 규모 이하의 농어가 주택은 허가 대상이 아니며 신고 사항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설계를 하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일단 지어 놓고 난 뒤 그대로 그려 달라고 하면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고 했다. 대략적인 집의 구조는 이미 생각해 두었기에 이웃(사오년 전에 먼저 집을 지어 본) 사람의 말만 믿고 무모하게 시작했던 탓이었다.  신고제라는 것이 그냥 일방적으로 신고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건축사를 통해서 설계도면이 면사무소에 들어가야 신고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헌집을 철거하고 기초 콘크리트를 하기 직전에 행정적이 절차를 시작했다. 레미콘의 배달 연기 요청을 건축사무소로 가는 차안에서 했다. 책임자의 전화기 너머로 육두문자가 들려왔다. 애걸복걸 사죄를 하는 모습이 옆에서 보기에도 민망했다. 

 
건축사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주었다. 대지 582번지의 일부를 582-2번지로 분할해서 구입을 한 것이 경인년이었다. 그런데 582-2번지에 실재하는 건물(큰집 큰채와 사랑채)이 건축물대장에는 아직도 582번지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것을 먼저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면사무소로 달려 갔지만 안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두 건물이 경계선을 벗어나 구거(국유지?)를 물고 있다고 했다. 63년 전에 지은 건축물이니 현상유지는 가능하지만 다른 행위는 안된다고 했다. 난감한 상황에서 생각해 낸 것이 대지 분할이었다. 582-2번지에서 일부를 떼어내서 582-4번지로 만들고 거기에 집을 짓기로 했다.    
 
다음은 신축건물이 임야(토임)를 침범하는 문제였다. 어릴 때부터 구경한 적도 없는 임야(황령리 583번지)가 우리집 진입로와 마당과 큰채를 물고 있었던 것이다. 매매 계약할 당시는 몰랐고 분할 측량하여 잔금을 지불하면서 처음 알았던 사항이다.  "그거 얼마 안 되니 그냥 사용하라"고 매도인은 인감증명서를 넘기면서 인심 좋게 말했다. 하지만 신축 건물이 남의 땅인 임야를 침범하게 되었으니 사용 승락서를 받아 오라고 했다. "그것 몇푼 되지 않으니 다 사라"고 주변에서는 권했다. 건축물 귀퉁이 조금 물리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결국은 100여평의 임야를 사고 말았다. 대부분이 길로 들어가 있고 동네 사람들이 통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어려운 땅이었다. 매매 후 소유권이전까지  또 며칠이 지나갔다.

 
다음으로 남은 문제는 헌집의  철거였다. 사실은 며칠 전에 이미 철거한 건물이지만 건축물대장에서 말소가 되어야 새 건물의 신축이 가능하다고 했다.  병자년(십오년 전)에 조립식판넬로 새로 짓고 취득세까지 낸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직도 토담집이고 어머님의 명의로 남아 있으니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어머님이 안 계시니 아들딸 육남매의 인감을 받아야 말소가 된단다. 속으로 욕이 나왔지만 한시가 급하니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저녁에 누님과 동생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하루 쉬고 옆 사람이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여섯명의 인감증명서를 제출하니 "이렇게 협조가 잘 되는 형제들 처음본다"고 담당직원이 놀라더라는 전언이었다.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자랑하고 싶다.

 

그 이후의 일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갔다. 그때 나는 아직 직장생활을 하던 때라 대분의 일을 두분 사장님의 협의하에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 당초의 계획과는 다른 결과과 몇 가지 있었다.

 

중앙 전면에는 출입문만 내고 준공이 끝난 뒤 가작을 달아서 그 밑에 신발장 등을 놓는 것이 내 복안이었다. 그런데 현관을 건물 안쪽으로 들여 놓아서 거실이 많이 좁아졌다. 건축도 하나의 작품으로 보고 전체적인 완성도를 중시하는 도편수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라고 하겠다. 예술적인 안목에서는 낙제점이고 실용을 최고로 아는 나의 취향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더 있었다. 지붕을 일직선으로 연결하지 않고 이단으로 어긋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겠다고해서 처음부터 동의를 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비용이 추가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나중이었다.

 

화장실 면적을 늘리면서 주방이 좁아진 것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처음부터 나는 다른 집 화장실을 가서 보고 실측을 한 후에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그런데 왜 변경하는 것에 왜 동의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고 옆사람은 동의를 해 놓고도 후회를 했다.

 

집을 지어 놓고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서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후회가 되는 몇 가지를 언급한 것은 집을 짓는 사람이 이 글을 읽고 난 뒤 참고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출근하고 없는 동안 모든 것을 챙기고 고 밥을 하느라고 애쓴 옆사람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책임을 맡아서 일을 꼼꼼하게 처리한 도편수와 여러 가지로 협조해주신 여러 이웃들께도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큰집  큰채를  중수한  이야기 

아랫집의 내력(1)_아버님 지으신 집

아랫집의 내력(2)-어머님 집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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