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더불어

가방끈만 길었지

임재수 2022. 11. 4. 17:18

가방끈만 길었지

추억과더불어

2019-02-16 18:20:51


생애 단 한번의 낙방은 1977년 봄에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장교가 되고 싶어서 학군단에 지원했던 것이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장학금에 눈이 멀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2년간 장학금을 받고 그만큼 더 복무하는 조건이었다. 가입단 훈련이란 것 참으로 힘이 들었지만 그 달콤한 미끼를 생각하며 어찌어찌해서 극복했다.
 
그런데 정식 입단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나는 제외 되었다. 신원 조회에 걸렸는지 왜소한 체격 탓이었는지 그 이유도 자세히 알려 주지 않았다. 소령인지 중령인지 나를 부르더니 "자네 같은 체격이면 아마 병으로도 입대하지 않고 면제 받을 것"이라고 달랬다. 허탈한 심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좀 악착같이 버티지 않고 순순히 물러섰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 이듬해 징병검사를 받았고 현역병 입영 대상자가 되었다. 또 그 다음해 입대를 앞 둔 8월 어느 날 면사무소 호병계를 찾아갔다. 주변에서 <여섯 남매중 둘째인데 위로는 출가했고 어린 동생들이 넷이나 있으니 면제 사유가 충분하다>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상담을 하니 밭이 두 떼기나 있고 논도 큰 덩어리가있으니 해당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상속을 받지 않고 할아버지 명의로 남아 있으니 "우리 땅이 아니라"고 했지만 세상이 다 아는 일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입대를 한 후 그 때의 상황을 이야기 하다가 아는 체하는 후배한테 핀잔을 들었다. <조금만 집어 주었으만> <장부상으로 없는 땅 눈 감아 주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는 해석이었다.
 
입대를 하지 못했지만 달리기도 잘하고 씨름도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대신 가방끈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징발해 갔다. 결국 나는 27개월 동안 고문관 취급을 받았다. 극단적인 선택의 유혹이 자주 접근해 왔지만 홀로 계신 어머님과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며 순전히 악으로 이겨냈다.
 
구멍 뚫린 독에 장이나 막걸리를 보관할 수는 없어도 배추나 무우를 넣어 둘 수는 있다. <M60기관총 사병으로 달리기 꼴찌하던 나 같은 사람밖에 없었을까?> 지금도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요즘 군대는 많이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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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홍머시기의 논리대로 하면 <생애 단 한번의 낙방>이란 말은 거짓말이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교장 시험 교감 시험에 응시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응시하지 않은 것은 낙방한 것과 같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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