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추억과더불어
2019-12-25 21:46:38
열다섯 살 그러니까 1970년 봄에 처음으로 목욕탕이란 곳을 가 봤다. 그때 [서부지구학도체육대회] 그리고 [경상북도학도체육대회]라는 두 개의 큰 행사가 내고장 상주에서 연거푸 열렸다. 만만한 2학년이었던 우리는 오전 수업 끝난 후 거의 매일 집단체조 연습을 했다. 이른 봄 쌀쌀한 날씨에 반바지인지 검은 팬츠인지 헷갈리는 것을 입고 매일 운동장으로 나갔다. 때가 꼬질꼬질하게 눌러붙은 내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지저분하다. 돈 50원이 그리 없느냐"고 옆짝궁이 핀잔을 주었다. 그래서 큰맘 먹고 찾은 목욕탕이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뜨끈뜨근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신나게 밀었다. '국시꼬랭이'가 한도 없이 밀렸다. 점잖은 신사분이 탕 안에서는 때를 밀면 안 된다고 자상하게 일러 주셨다. 어떤 친구는 고추 자랑 하기 싫어서 팬츠 입고 탕에 들어 가다 혼났다고도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만큼이나 지독한 산골 출신이었다.
우리집 바로 앞에 도랑이 흐르기에 어린 시절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멱을 감았다. 아예 마루 위에 옷을 벗어 놓고 손바닥으로 고추만 가리고 가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것도 끝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그랬다. 아 그러고 보니 겨울철에도 목욕을 일년에 딱 한번은 했다. 설이 다가오면 재래식 부엌이나 안방에서 큰 대야(?)에 데운 물을 담아서 씻었다. 그 대야에 들어 갔는지 어쩐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저학년 시절에는 낯도 씻지 않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담임선생님께서 자주 검사를 하셨다. 하얗게 서리가 내린 늦가을 아침에 호래이 선생님께서 불합격한 학생들을 언덕 아래 도랑으로 쫓아 보내셨다. 찬물에 세수를 하고 숨을 헐떡이며 돌아 오던 선배들 모습이 떠오른다.그때 우리는 1~2학년 꼬맹이라 찬물에 세수하는 벌은 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나 누나가 밥하기 전에 동솥에 물을 조금 데워서 세숫물로 썼다. 쇠죽 끓이는 솥 가운데 물 담은 세숫대야를 따로 얹어서 데우기도 했다. 퍼주고 남은 뜨끈뜨근한 쇠죽 찌꺼기로 손등 발등을 문질러 묵은 때를 벗기기도 했다. 도랑에서 주운 적당하게 거친 자갈로 손등이나 발등을 밀기도 했다. 추운 날씨에 때가 낀 손등이 갈라져서 피가 나는 경우도 많았다. 이때 바르는 것이 구리무와 맨소리담이었다.
1979년 11월 중순 쯤 자대 배치를 받고 한겨울에 이등병시절을 보냈다. 때빼고 광내고 멋부릴 나이 꽃다운 스무살 시절이었다. 하지만 낮에는 교육훈련 저녁에는 시집살이가 고달픈 신병에게는 만사가 귀찮기만 했다. 게다가 콘센트 막사에 분탄 난로를 피우고 그 위에 물을 데워서 식기 세척하고 세수하고 빨래도 하는 열악한 조건이었다. 그나마 신병들에게는 기회가 잘 없었다. 그래도 부지런하고 깨끗하게 씻고 멋부리는 친구도 있기는 했다. 어느날인가 간부가 보고 지적을 했다. 중고참들을 불러 모은 왕고참이 호통을 쳤다. 중고참이 난로에 물을 끓이더니 세숫대야 세개(?)에 나누어 담고 찬물을 조금씩 섞었다. 지적 받은 신병 세명에게 지시가 떨어 졌다. "실시"라는 복창과 함께 뜨거운 물에 손을 짚고 엎드렸다. "앗 뜨거"라는 비명과 함께 셋은 총알처럼 튀어 올랐다. 그러자 한 대씩 쥐어 박더니 다시 "실시"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다시 못참고 일어났지만 전번 보다는 좀 오래 갔다. 맞고 다시 엎드리고 여러 번 더 반복하더니 마지막에는 십여분 엎드려 벌을 섰다. 그리고 나니 때가 퉁퉁불어서 씻기가 쉬웠다고 했다.
공휴일었던 어느날 느긋(?)하게 쉬는데 집합명령이 떨어졌다. 파견 나와 있었던 우리 중대원은 대대본부로 목욕하러 갔다. 소대별로 나누어 갔는데 화기소대인 우리가 마지막이었다. "어이 0상병 신병들 제대로 씻는지 똑바로 검사해"라고 왕고참이 말했다. 그러면서도 고참들 몇은 빠졌다. 일직하사가 재촉을 하니 <어제 씻었다> <오늘 면회 온다고 했다> 등 핑계도 여러 가지였다. 우리가 도착하여 탕에 들어 가고 난 후에 소동이 벌어졌다고 했다. 치밀한 일직사령이 목욕하러 온 우리 중대 인원을 파악했고 전화로 우리중대 일직사관에게 호통을 쳤다.
결국 목욕 안간 고참들은 전부 연병장으로 불려 나갔다. 다른 소대에도 안 갔던 고참들이 있었기에 꽤 여러 명이 모였다. 한참 설교를 듣던 고참들이 헐레벌떡 내무반으로 뛰어 들어 오더니 반합을 찾아서 물을 담아서 연병장으로 갔다. 선착순이었던지 눈깜짝 할 사이에 움직였다. 떠 온 물을 앞에 두고 모두 팬티차림이 되었다. 어디에나 눈치 빠른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서도 더운 물을 담아서 간 사람이 몇명 있었다. 그런데 일직 사관도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던 모양이었다. 찬물 떠온 사람은 그냥 들어 가고 더운물 떠온 사람만 엄동설한에 연병장에서 목욕을 했다.
요즘이야 우리 집에도 목욕탕이 있다. 그래도 한겨울에는 좀 성가시다. 가까운 곳에 성주봉 자연휴양림이 있고 목욕탕도 있다. 승용차로 가면 10분이 안 걸린다. 목욕탕을 다녀온 후 옛날 생각이 나서 넋두리 한번 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