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의음모
땅과더불어
2019-06-02 17:38:46
뒷뜰 논에 가서 하우스 문을 열어 주고 청너머 두릅밭으로 갔습니다. 해가 떠 오르고 난 뒤 너무 늦게 문을 열어서 고추가 삶긴 듯 시들시들해서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무 탈이 없은 듯이 소생했지만 다시는 그러면 안된다고 명심하고 있습니다.
두릅밭은 줄기와 잎이 제법 무성하게 자라서 이제는 통로가 아니면 빠져 다니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무 사이에 자라는 풀은 낫질도 어렵고 뽑기도 어려워 이제 포기하는 단계입니다. 그래도 자세히 살펴서 나무를 감고 오르는 덩굴이 보이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제거해 줍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줄기들을 상자에 담아서 차에 실었습니다. 작년에 잘라서 잘 마른 것과 금년에 자른 줄기를 구분해서 담으면 좋으련만 번거로워 그냥 한 곳에 담았습니다.
밭이 동남향 비탈이라 그런지 아홉시가 넘자 많이 더웠습니다. 그래서 고사리밭으로 이동했습니다. 여기는 동쪽 산밑이라 아직 그늘이 많았습니다. 수확은 어제 했으니 오늘은 아니고 내일 할 차례입니다. 여기 저기 다니면서 풀을 뽑았습니다. 키가 좀 자라서 잡고 당기기 쉬운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솟아 나는 어린 것들을 뽑으려고 하니 시답잖고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도 밥값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밭고랑만 헤아리듯>* 하다 보니 시내버스가 들어 옵니다. 열한시가 조금 덜 된 시간입니다. 그만하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채비를 하다 보니 좁은 농로길을 종고모부님의 트럭이 막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하시는 분께 비켜 달라는 부탁하기도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갈을 골라냈습니다.
열두시 조금 넘자 트럭이 떠났습니다. 저도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사장님께 따졌습니다.
"둘이서 짰지~?"
"먼 소리여?"
"차가 길을 막고 안 비키 주시자나?"
"그래서?"
"한 시간 반이나 더 해짜나"
"나~안 또 무슨 일인가 해찌"
"치사하게 그런 수를 쓰다니"
"얼렁 씻고 점심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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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고랑만 헤아리듯> 은 <게으런 농부는 밭고랑만 헤아리고 게으런 선비는 책장만 헤아린다>는 옛말에서 따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