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더불어

어망으로 성을쌓다

임재수 2022. 11. 4. 17:44

어망으로 성을쌓다

땅과더불어

2019-06-17 16:27:05


주상께서 부르신다는 기별에 자다가 일어나 세수도 대충하고 허둥지둥 입궐을 했다..

"저~언하 축성사에 새로이 제수된 칠성 대감 입궐하였사옵니다."

"어서오시오 임대감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소?"

"낙향하여 이웃들과 어울려 귀거래사나 읊으며 여유롭게 살고 있으니 주장전하의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변방지역이 소란하여 어쩔 수 없이 대감을 다시 불렀소."

"초나라 병사들이라면 일전에 호미 장군께서 평정하신 걸로 아옵니다만"

"변방을 넘나들며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들이 어디 초나라 오랑캐 뿐이겠소"

"하오면?"

"노나라 오랑캐들이 서북지역에 자주 출몰하여 금년 농사를 망칠 지경이라는 아우성이오"

"오랑캐들을 소탕하는 일이라면 무장을 보내시지 어찌 저같은 백면 서생을 부르셨사옵니까?"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오"

"무슨 말씀이시온지?"

"오랑캐라고 모두들 미워하지만 알고 보면 저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 불쌍한 목숨들이지요. 저 쪽에 흉년이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이 땅을 침범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자칫 잘못하면 <야만적이다> <살상이다>는 국제적인 비난을 살 수도 있으니 소탕을 하지말고 성만 쌓기로 결정했으니~"

"소신은 토목 분야에도 아는 바가 없사온지라~"

"모두들 대감이 적임자라고 추천하기에 축성도감 축성사에 제수하니 힘써 주시오."

"전하의 뜻이라면 소신 분골쇄신하겠사옵니다"

사은숙배를 드리고 물러났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임지로 나갔다. 거기서 나는 완전히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말이 좋아 축성도감사이지 나에게 배속된 수하가 단 한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면서 성을 쌓아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사령장이 들어 있다는 봉함을 열었다. <교지 예천인 임칠성 병신생 명 축성도감축성사> 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말미에는 <나라 형편이 어려워 인력도 장비도 지원을 못하니 경이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 하시오> 이런 말도 적혀 있었다.

허망한 생각에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한숨을 쉬면서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다시 일어 났다. 왕명은 곧 천명이니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주변을 둘러 보니 어망 두 다발 고추지지대 두 단과 망치 그리고 나이론 끈 한 다발과 가위가 있었다. '축성사는 무슨 개뿔'이라고 투덜거리며  혼자서 성을 쌓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여왕전하께서 호미를 들고 나타나셨다. 

"소신을 못 믿어 감시하러 납시었습니까?"

들은동 만동 그냥 호미를 들고 참깨 골로 들어 가셨다.

"아니 섬섬옥수에 흙을 묻히시면 소신은 어찌하라구요?"
"칭구들이 하는 주유소나 서즘에 일가시간 이후에 가본 적 있소?"
"있사옵니다."

"종업은들 다 태근하고 주인들만 건무하는거 바써요?"

"그런거 같습니다만 이 상황에 왜 그런 말씀을?"
"우리 집 형편도 비슷하다구요"

"___"
그날 황송하옵게도 여왕전하께서는 참깨 모종에 손수 흙을 떠 부으셨고 나는 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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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성도감(축성사) : 조선시대 성을 쌓기 위한 임시 기구로 축성도감을 설치하고 책임자가 축성사였다고 들었음 고려시대 때도 축성도감을 설치했다고 함

초나라 오랑캐와 호미장군 : 전지에 돋는 풀들과 호미를 의인화

노나라 오랑캐 : 노루 또는 고라니를 말함 

호미장군의 초나라 오랑캐 소탕한 이야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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