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더불어

내혼자쪼구를먹으면

임재수 2022. 11. 4. 17:50

내혼자쪼구를먹으면

가족과더불어

2019-09-06 22:02:28


금년 들어 처음으로 수색정찰 겸 산악행군에 나섰다. 나는 실력도 없고 취미도 없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냥 따라 다녔다. 철이 조금 이른지 다른 사람이 지나가고 난 뒤라 그런지 전과는 신통치 않았다. 집에 와서 씻고 점심을 먹는데 택배가 왔다.

 

포장을 참 단단히도 했다. 상자를 감은 테이프를 제거하고 열려 하는데 열리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테이프로 덮개와 몸통을 함께 감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성질 급한 사람 숨넘어갈 정도였다. 배달 과정에 혹시나 파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정성이 가득 한 포장이었다. 전문가는 딱 필요한 만큼만 하겠지만 아마추어라 너무 단단하게 한 모양이었다.

 

커다란 쪼구가 두 마리 조금 작은 것이 여러 마리 들어 있었다. 얼음 팩도 있었고 검은 비닐봉지도 두 개나 있었는데 각각 오징어 한마리가 들었다. 보내준 정성에 감읍하며 인증샷을 찍어 서 잘 받았다는 인사와 함께 날렸다. 그리고 냉동실에 넣고 나니 피곤해서 잠시 누웠다.

 

그러다가 갑자기 술이 마시고 싶어서 뒷집으로 가 소주 한 병을 꺼내 왔다. 오징어를 데쳐서 안주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에 냉장고 문을 열고 꺼냈다. 칼을 들고 손질하려는데 갑자기 엄마가 참견을 하고 나섰다.
아부지 드리고 머거야지

아 그러쿠나! 엄마 미안해여!”
나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꺼냈던 오징어 한 마리를 도로 집어 넣었다. 그리고 엄마한테 물었다.
근데 아부지는 운제 오시여?”

이제 일곱 밤만 자만 대여

그래서 나는 손가락을 꼽아 봤다. 오늘이 팔월 초여드레니까 일곱 밤만 자면 추석이다.
그때 아부지캉 엄마 같이 오시는 거지?”
그럼 그러코 말고! 나 간다 그날 다시 보자

엄마는 가시고 나는 도로 누웠다. 그런데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먹고 싶어서 못 견디겠다. 떼를 쓰고 졸라 보려고 찾았지만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동생한테 전화를 했다. 동생이 보낸 거니까 동생 허락 받고 먹으면 되는거 아니냐고 생각했다. 신호 가는 소리는 들리는데 영 받지를 않았다. 손님이 몰리는 바쁜 점심시간이라는 생각에 끊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 보리라 마음 먹었다.

 

끊자 마자 벨 소리가 들렸다. 얼른 받아서 물어 봤다.

동생아 니가 보내 준거 추석 저네 미리 좀 먹으만 안 되나? 먹고 시퍼 미치겠다. 큰거 두 마리는 쓸거니까 잘 간수하고 자근 쪼구하고 오징어는 지금 머거도 대자나~”
애비야 나다!”
! 엄마!”

ㅉㅉ 오빠란기 우째 동생만도 모타나
“.......”
머글 생강만 하니 참 한심하다! 철모리는 동생이 고생해서 사 보낸긴데~
내 말좀 드러바 그기 아이랑깨
그때 전화기 저쪽 너머로 아부지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태풍 온다는데 머하고 인노

 

벌떡 일어나니 다섯시가 거의 다 되었다. 허둥지둥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뒤뜰 논으로 나갔다. 바람에 날려 가지 싶은 것은 모조리 하우스 안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좌우 환기창을 닫고 출입문도 닫고 열리지 않도록 묶었다. 집에 와서도 이것 저것 주워다 급한대로 부엌에 잔뜩 집어 넣었다.

 

그런데 오늘 저 쪼구 내 혼자 다 먹으면 밤에 아부지가 회초리 들고 나타나실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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