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더불어

현명한 소비

임재수 2024. 1. 21. 16:34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였으리라 짐작한다. 한창 수업을 듣고 있는데 이웃 마을 친구 어머니(할머니?)께서 들어오셨다. 손에는 톱과 망치 등의 연장이 들려 있었다. 선생님께서 연유를 물었다. 아들(손자?)의 연필이 교실 마룻바닥 틈새로 빠졌는데 꺼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선생님께서 잘 말씀 드려 그냥 돌아가셨다. 아마도 “제가 그 연필 대신 사주겠습니다.”라고 약속이라도 햐셨는지 모르겠다.
 
워낙 궁벽한 산골이었고 모든 물자가 귀했던 가난한 시절의 이야기였다. 여름철 도랑 건너다 고무신 한 짝 떠내려 보내면 마루 밑이 어느 구석에서 떨어진 헌 신 한 짝 찾아내어 짝짝이 신발을 신고 다녔었다. 오래 만에 미술 수업한다고 예고된 날, 막상 준비물을 제대로 갖춘 학생이 별로 없어 한숨만 쉬던 선생님께서 한참 뒤 “그만 산수책 꺼내”라고 하시던 때가 있었다. 그 다음해인가 새로 오신 선생님께서 다른 학년 수업을 하시는데 준비물 안 가져 온 학생을 밖에서 벌을 세우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니까 그 때는 절약이 미덕이었던 시절, 어쩌면 모든 것이 귀한 시대였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때였다. 그런데 요즈음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대형 마트 무료 시식 코너만 돌아다녀도 굶을 염려는 없다. 축제 행사장을 돌아 다니면 홍보물로 나누어주는 것들 다시 말하면 공짜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과거에는 절약과 저축이 개인의 미덕이고 사회의 미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개인의 미덕은 될지언정 사회의 미덕은 아니다. 쇠고기를 먹어 줘야 축산 농가가 살고 겨울철에도 수박을 사 먹어야 원예 농가가 산다.
 
선진국에서는 “소비가 미덕”이라는 것을 학창 시절에 듣고 엄청 부러워 했는데 우리도 이제는 그런 시대로 접어 든 것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신 박제가 선생은 벌써 “검소함이 능사는 아님”을 설파하셨다. 사치함도 아니고 검소함도 아닌 적절하고 현명한 소비 생활,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도와 가며 공존하는 생활을 해야 할 때다. 하지만 어느 정도가 적절한 소비인지는 잘 모르겠다. 각자 잘 알아서 판단할 수 밖에 없다.(2013.10.17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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