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더불어

달리기

임재수 2024. 9. 12. 17:39
언젠가 학생들의 성적표를 교실에 게시한 초등학교선생님이 뉴우스에 보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참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견에 의문을 제기할 생각은 없지만 도저히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성적표를 붙이는 것은 그렇게 비난 받을 일이고 부모 형제는 물론이고 온 동네 이웃 사람이 다 모인 운동회날 어린 아동들에게 달리기 시합을 시키는 일은 잔인한 짓이 아니냐고 묻고 싶습니다. 이쯤하면 여러분은 눈치 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한 마디로 힘도 없고 몸놀림도 둔합니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면 항상 꼴찌에서 1,2등을 다투었습니다. 그러니 가을 운동회만 다가오면 밥맛이 떨어지고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운동회는 계속되고 어린 아동 망신주기는 한해도 빠짐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2학년 때인지 3학년 때였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골찌를 면할 기회가 딱 한 번 있었습니다. 그냥 달리기가 아니고 1/3 지점에 마련된 쪽지를 주워 뒤집어 보면 “3×5=?”같은 문제가 있었는데 다시 1/3을 가면 답이 적힌 쪽지가 있고 그 중에서 맞는 답을 골라 가야 되는 달리기 경기였습니다. 연습을 할 때 1등은 아니지만 2등도 하고 3등도 했습니다.
그리고 운동회날 출발도 좋았습니다. 문제를 주워 정답을 줍는 선까지 갔을 때는 3등인지 4등인지 였습니다. 어쩌면 2등도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1등은 벌써 정답지를 주워 결승을 향해 질주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 그런데 정답이 없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옆의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결승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마지막 남은 정답 아닌 오답을 들고 결승을 향해 달렸습니다. 당연히 꼴찌였습니다. 그리고 일착을 했던 00도 실격이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꼴찌를 탈출해서 목에 힘 좀 주려던 나의 소망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2014.7.8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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