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우지락
웃음과더불어
2020-07-11 00:09:00
“군자삼락이란 군자가 누리는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하는데 맹자께서 하신 말씀으로 첫째는 부모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들이 아무 탈이 없는 것을 말한다 알겠나?”
월요일 4교시 창밖에는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2학년2반 교실에서는 담임이신 정순해선생님의 열정적인 수업이 진행되었다. 학창시절의 경험담과 동서양의 역사나 고전 야담 등을 섞어서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하셨다. 그러니 평소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시간만큼은 집중도가 꽤 높았다. 금년에 부임한 젊은 교사이기에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의 관심을 끄는 면도 물론 있었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마지막 즐거움이라고 하셨지, 그런데 저기 운도는 한 시간 내내 기도만 하네”
“선생님, 쟈는요 어재도 하루 종일 소 몰고 논 갈아써요”
“그래 머든지 열심히 하만 대는 거다. 그런데 공부도 하기 싫고 일도 하기 싫으만 나중에 어찌 대는 거지?”
“깡통 차고 길거리로 나가만 대요”
평소 선생님이 자주 하시던 말투를 흉내 내어 학생들이 대답을 했다.
“그리고 항 가지 더 있다.”
“뭔대요?”
“밤이슬 맞으면서 남의 집 담 넘어 댕기다 국립 호텔서 공짜로 잠자고 밥도 얻어 머그만 대는 거여”
두 눈만 말뚱말뚱 처음에는 서로 얼굴들 쳐다 보더니 하나씩 둘씩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물론 끝내 무슨 말이지 모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는데 마침종이 울렸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 화장실 근처에서 몇몇이 모여서 구름 과자를 먹으면서 입방아를 찧고 있었다
“오늘 순해샘께서는 아주 중요한 거 항개를 뻐 잡솼다.”
공부도 제일 잘하지만 요즘 무협소설에 심취한 철민이가 말문을 열었다.
“머를?”
“운우지락”
“거기 먼데?”
“응 무슨 말인고 하만 남녀가 함께 누리는 즐거움 뜻하는 말인데 전국시대 초나라 회왕이 무산으로 놀러 갔을 때 ~”
“거기 아이다!”
은우가 끼어들었다.
“____”
“오늘 가치 비가 내리 가이고 들에 몬 가만 농사꾼이 집에서 할일이 머 잇겐나 생각해 바라! 다시 말하만 먹구름이 잔뜩 끼고 천둥치며 소나기 짜드는 날 농사군 내우가 누리는 즐거움이 운우지락이다. 철민이가 공부도 잘하고 책은 마이 밨지만 EDPS로는 나만큼 안 대여”
그때 금방 볼일을 마친 운도가 합류를 했다.
“그래 내가 졌다. 아무튼 군자삼락 중의 제일이 운우지락이라는 거는 분명하네”
“오늘 배운 군자삼락 얘기여?”
운도가 참견을 했지만 시작종이 울려서 모두들 교실로 몰려 갔다.
다음날 순해 선생님 수업은 5교시였다. 이날은 운도도 멀쩡했다. 전날 비가 와서 들일을 하지 않고 푹 쉰 모양이었다.
“오늘은 우째 운도가 팔팔하네”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재송함니다. 그래도 선생님께서 갈챠 주신 군자삼락은 똑또키 기억합니다.”
“말해바!”
“그 첫째가 말입니다. 으~어 머더라 운~운~ 어~ 운우지락입니다.”
그러자 누군가 책상을 두드리며 웃기 시작했다. 선생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평소 이쁘기만 했던 선생님이 저렇게 변하다니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철민이와 은우는 처음부터 기가 질렸고 처음에는 요란하게 웃던 그러니까 어제 점심시간에 동참했던 아이들도 곧 웃음을 거두었다. 운도를 비롯한 나머지 학생들은 영문도 모르고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교탁 옆에 서서 두 눈을 꼭 감고 양손은 치마 자락을 움켜 쥔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계셨다. 폭풍 전야처럼 무시무시한 침묵만이 감싸고 돌았다.
“박운도학생은 교무실 복도에서 대기하도록 해요”
착 가라 앉은 목소리로 정중하지만 단호한 지시가 떨어졌다. 도대체 왜 그러시냐고 이의를 달듯말듯하다가 운도는 체념한 듯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에 평소와 달리 알맹이로만 가득 찬 수업이 이어졌다.
한참 후 선생님께서 어느 정도 평온을 되찾은 듯 보이자 은우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선생님! 운도는 아마 그 말 제대로 모르고 했을 겁니다.”
선생님께서는 못 들은 척 수업을 계속하셨다. 그러자 철민이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자
“선생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운도 같이 착한 애가~”
“머? 그럼 니들은 그말 제대로 안다고?”
“으~엄 그 거게~”
“아무래도 이상혀”
그 때 은우가 갑자기 벌떡 일어 났다.
“머야”
“선생님 화장실.”
“차마”
“급합니다”
“사내 자식이 엄살은”
“절대로 아입니다”
손에는 화장지를 들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급한 표정을 지었다.
“1분 이내로 갔다와”
은우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뒷문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조금 후 들어왔다.
그리고 좀더 수업을 진행하시던 선생님이 지시를 했다.
“실장 가서 운도 데리고 와”
“제가 다녀 오겠습니다”
선생님과 실장의 대답도 듣지 않고 철민이가 나가서 운도를 데리고 왔다. 철민이는 자리에 앉고 선생님이 운도보고 물었다.
“운우지락이 무슨 뜻인 줄 알고 있나?”
“예 잘 압니다.”
“말해봐”
“예전에 군자는 벼슬길에서 물러나면 손수 논을 갈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면 들에 나갈 수 없으니 집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 무척 크지만 비오는 날이 아니면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생이니 예전 말로 하면 선비이고 군자입니다. 그러니까 운도가 비오는 날 집에서 책을 읽는 즐거움이 운우지락입니다.”
“와~”
여러 학생들의 입에서 탄성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이럴 땐 박수 치는거야 박수”
은우가 슬쩍 일어서서 손짓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이상하다는 듯 철민이와 은우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시며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마침종이 울리고 나가시던 정순해 선생님은 복도에서 종이 쪽지 하나를 주워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