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861

묘한 우연

대여섯살 어린 시절 주변에서 나를 "선생님"이라고 놀렸다. 아버님께서 농암장에서 사다 주신 양복(노마이라고 했던 기억이 남) 덕분이다. 그때 우리 동네에는 양복 입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양복입은 꼬맹이가 특별한 존재(놀림감)가 되었던 것이다. 중학생 시절 담임 세 분 중 두 분이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네 분 중 두 분이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국어 교사가 되었다. 미적인 감각도 없고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사람이 시를 이야기하고 예술을 논했다. 옆사람의 마음도 읽을 줄 모르면서 생활지도랍시고 인생상담을 했다. 그럼에도 대과 없이 교직생활 31년을 마무리했다.(11년전) 복받은 인생 더더욱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해 본다.

소소한일상 2024.02.19

40년전의 악몽

호주와 8강전을 갖게 되니 40년 전의 악몽이 떠 올랐다. 뮌헨월드컵 최종 예선전 1차전(원정경기)에서 비기고 2차전(홈경기)도 비겼다. 제3국에서 치른 3차전에서 1:0으로 패배해서 좌절하고 말았다. 그런데 다들 9년전의 패배를 손홍민 선수가 설욕하였다고 보도한다. 이거 뭐야 나만 구닥다리 세대가 되는가? 우승까지 가자! ========= 생각해보니 지역 예선이 열렸던 1973년은 자취하던 주인댁에 텔레비전이 있어서 예선전 내내 구경을 했었습니다. 그 전 해만해도 주변에 없어서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펠레가 소속된 브라질 산토스팀을 초청해서 친선경기가 열릴 때도 만화방 가서 봤지 싶습니다.

추억과더불어 2024.02.19

포장상자

마당에서 청소를 하다가 복길이의 전화를 받은 일용이는 식식거리며 들어 왔다. 딸한테 그러니까 사돈댁에 보낸 두부가 농약 상자에 담겨 있었다는 말이었다. 수입콩이 아닌 직접 농사지은 콩을 멧돌에 갈아서 가마 솥에 끓여 만든 시골 손두부라고 보냈던 것이다. 일용 : 택배 상자 포장 당신이 했어? 일용처 : 그런대 왜유? 일용 : 농약상자도 몰라? 도대체 생각은 하고 사는거야? 일용처 : 무슨 말이요? 나는 회장님댁에서 얻어온 부추 상자에 담아서~ 일용모 : (마실갔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내가 바깠지. 너무 지저분해서. 사돈댁에 보내는 겅깨~ 일용 : 어떤 상자로? 일용모 : 아리채 옆에 있덩거 아주 새거던대? 일용 : 그 그거 농약 상자인대 일용모 : 머시라? 이걸 우째노 사둔댁에~ 일용 : 그렁깨 그..

소소한일상 2024.02.19

긴급사태

--그 사람 총이라도 들었나? --아니! --낫이나 포크라도 쥐고 휘둘렀나? --그것도 아니여! --그만 입으로 물어 뜯을 위험은? --거리가 멀어서 그것도 불가능 하대여! --그럼 왜 입을 틀어막고 끌어냈을까? --고의적인 정치행위를 했다고 비난을 하던대! --그렇다고 강제력을 동원할 정도의 긴급 사태는 아니여! --행사 방해라는 견해도 있지! --그건 학교 당국이 판단할 일이지 경호실에서 나설 일이 아니지! ----------- "고의적인 정치행위"라는 비난도 "졸업식 방해"라는 의견도 일방적인 주장을 인용했을 뿐이지 제 생각은 아닙니다.

세상과더불어 2024.02.19

모르는 전화

바쁘게 일하는데 쓸데없는 전화가 오면 정말로 짜증이 난다. 그날은 이슬도 마르기 전에 고사리밭으로 나갔다. 귀(족)농(부)이란 말을 듣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지면서 열심히 풀을 뽑았다. 그러던 차에 전화가 왔다. "아, 누구여!, 모처럼 맘잡고 일하는데" 무시할까 했는데 계속 울렸다. 섶을 헤치고 전화기 담긴 바구니까지 갔다. 이슬과 흙으로 범벅이 된 장갑을 벗었다. 장갑속까지 스며들어 젖은 손을 윗도리 아랫도리에 매매 닦았다. "안녕하세요 인터넷 통합가입센터입니다~"정말로 쌍욕이 튀어 나왔다. 다행히 옆에서 듣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논농사 그만 두었지만 논에서 그런 경우가 더 많았다. 어디선가 하소연을 했더니 하라고 가르쳐 준다. 내 기기에 저장된 번호와 그렇지 않은 전화번호가 소리로 구별되는 방식이..

소소한일상 2024.02.16

술 권하는 사회

그 시절에는 기분 좋게 취한 적이 별로 없었다. 술이 과해도 정신은 또렷한데(나만의 착각??) 잠을 잘 수 없었다. 자려고 눕거나 눈만 감아도 평소와는 달리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한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깰 때까지 두 눈을 부릅 뜨고 일어나서 버텨야만 했다. 술이 과할 때는 집 근처 골목길에서 한두시간 뺑뺑이를 돌다가 들어 갔다. "기계가 새것이라서 너무 예민해서 그렇다. 낡아서 성능이 떨어지면 정신을 잃고 퍼질러 자게 된다"는 선배 강모선생님의 이론에 그냥 피식 웃고 말았었다. 그놈의 술을 왜 마시느냐고 묻는다면 답변은 하나다. 단지 이놈의 세상 때문에 억지로 마신다. "현진건의 술권하는 사회"를 연상하면 틀렸다. 나라 걱정에 잠못 들어서 비분 강개하면서 마시는 우국지사는 그때..

소소한일상 2024.02.14

둔한 사람

내가 근무하던 시골 중학교에 인쇄기가 들어온 것은 1985년도(전입3년차) 2학기도 한참 지났을 무렵이다. 전역후 복직발령을 받았던 P고교에는 벌써 있었던 것이니 3년이상 늦었던 것이다. 시험지원안 육필로 쓴 다음 결재 받고 다시 필경을 해야만 했던 처지에서 벗어났다. 학습 자료 만들기도 식은 죽먹기니 신명이났다. 지문을 오려 붙이기 위해서 시내 책방에서 헌 교과서도 사왔다. 서점과 출판사에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홍보용으로 나온 문제지를 오려 붙이기도 했다. 학생들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물론 그 비명의 성격은 사람마다 달랐을 것으로 추측한다. 얼마인가 시일이 지나고 사전 결재를 얻은 후 인쇄를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만들었다. 악필이었기에 지금까지 겪었던 처지를 생각하면 결재..

추억과더불어 202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