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더불어 37

익지도 않은 대추를

익지도 않은 대추를 가족과더불어 2018-10-07 22:52:39 "한잔만 받으셔요" "그래 따라 바라" 아버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한잔씩 올렸다. "캬~ 술맛 조타" 아버님께서는 기분 좋게 한잔을 마시고는 잔을 내려 놓으시더니 상위를 두루 살피셨다. 그리고는 접시위에 놓은 대추를 가리키며 저를 향해 하문하셨다. "이기 머냐?" "대춤니다" "그걸 누가 모리냐?" "예에?" "항개도 안 이거짜나" 그러고 보니 시퍼런게 조금도 익은 것 같지 않았다. 당황한 나는 뒤를 돌아보고 누군가를 향해 물었다. "누가 저런 걸 땄어? "뒤안에도 안 익어꼬 청너매 밭에 가도 모두 다 그래요" "그럼 농암자아라도 가 보등가" "올개는 추석이 빨라 가이고 장에도 이근거는 업다네요" "그럼 작년에 말..

가족과더불어 2022.11.04

공주님들의 싸움

공주님들의 싸움 가족과더불어 2018-08-12 21:30:14 서울에 사시는 장모님 세째 따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다섯째 따님이 받으셨다. 셋째 : 고사리 마흔 봉다리만 주라. 다섯째 : 알아쪄 셋째 : 올 고사리 조은 걸로 조야 해 다섯째 : 걱쩡 부뜰어 매랑께 셋째 : 왕언니 조은거 다 주고 나는 찌꺼기 주만 가만 안 둔다 옆에서 들어보니 대충 그런 내용이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어 한마디 보탰다. 전화기 너머에 계시는 셋째와 옆에 계신 왕언니(첫째 따님)도 들을 수 있도록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나 : 내년부터는 수학이 다 끝나거등 골고루 섞어서 한꺼번에 나누어 주어야 하겠다. 이러다가 잘 모타만 의가 상할 지도 모르자나 첫째 : 조은 거 먹고 시푸만 내리 와서 일 하라고 해! 고사리밭 풀도 ..

가족과더불어 2022.11.04

나도 엄마가 있으면

나도 엄마가 있으면 가족과더불어 2018-07-25 09:50:50 전화가 왔다. 한마을 사는 친구 명석이다. "순구가 와서 한잔 하고 있엉께 얼런 와" "지금 점심 먹고 있는데" "그냥 내려 와 순구네 집으로" 숟갈을 들다 말고 그냥 내려 갔다. 근처에 가자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마당에 들어서자 숯불이 이글거리는 화덕(철망)위에서 삼겹살이 노릿노릿 익고 있었다. "얼런 와!" 순구 어머니께서 반색을 한다. 작년에 팔순을 지내신 분이다. "아이구 고생이 많습니다." "고생은 무슨~" "이게 얼마 만이야? 얼굴 잊어 먹겠다" 나는 친구를 향해 인사를 했다. "작년 봄에 밨자나?" "엄마 혼자 계시는데 더 자주 와야지?" "야! 그동안 몇 번 왔다 갔었지" "왔으면 이 놈아 형님 보고 인사를 하고..

가족과더불어 2022.11.04

생일은 엄마를 챙기는 날

생일은 엄마를 챙기는 날 가족과더불어 2018-07-14 21:22:16 함창 명주박물관 근처 에서 우리집 육남매가 모두 모였습니다. 푸짐하게 차려 놓았습니다. 케이크 위 초에 불을 붙이고 모두들 합창을 했습니다. "생일 축하 함니다. 생일 추카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오~빠 항갑추카 함니다." 입으로 불어서 촛불을 끄려다가 생각해 보니 좀 이상했습니다. 나(둘째) : 머라캔나 시방? 항갑? 그러고 보니 케이크 위에 꼽힌 초가 굵은 게 여섯이고 작은 것이 두 개였습니다. 나는 굵은 초 네 개를 뽑아 냈습니다. 나 : 머 이키 만나? 나는 아직 스물살 밖에 안 댔는데 그리고 작은 것 두 개마저 빼내려고 하는데 첫째 : 왜 이카나 동생 니 나이도 모리나 막내 : 낼모래면 내가 오십이유, 그런데 엄마는? 세째..

가족과더불어 2022.11.04

맨손으로 벌초한 사연

맨손으로 벌초한 사연 가족과더불어 2018-07-12 23:12:04 벌써 10년 전의 일입니다. 추석 차례를 지내고 동생 둘과 나 그리고 우리 아들 네명이 아버님 산소로 성묘를 갔습니다. 그런데 어째 이런 일이! 아버님 산소에 벌초가 안된 상태였습니다. 사실 우리 집안(5대조 할아버지 자손들)이 모두 같은 날에 모여서 같이 벌초를 하다 보니 저와 동생은 외딴 곳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다녀오는 관계로, 아버님 산소는 다른 친척들과 아들(손자)이 하기로 되었었는데, 아 이 어린(?) 것[사실은 중학교 3학년] 제 할아버지 산소가 어딘지도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 이전에 몇 번 데리고 다녔기에 당연히 알겠거니 믿었던 내가 불효막심한 놈이 되고 말았지요 ‘야 이놈아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지 할..

가족과더불어 2022.11.04

장수의 기준

장수의 기준 가족과더불어 2018-06-30 13:48:20 벌써 이십년 전의 일이다. 둘째 처남이 별세하셨다. 연가를 내면서 그냥 적당히 둘러 대려고 했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진지하게 질문하시는 바람에 나도 몰래 실토를 했다. “저런 어쩌다가 그래?”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살만큼 사셨습니다” “올해 몇인데?” “내년(후년?)에 환갑입니다.” “데끼 이사람아 그걸 뭐 오래 살았다고” 그냥 의례적으로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교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엄청난 실언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였다. 그러니까 돌아가신 분은 그 분보다 한참 젊었던 것이었다. 1976년 아버님께서는 50에 세상을 뜨셨다. 어머님은 49, 저는 21, 아홉 살 위의 누님은 출가, 밑으로는 동생이 넷, 그중 막내 동생이 여덟 살이었는..

가족과더불어 2022.11.04

손자자랑

손자자랑 가족과더불어 2018-06-28 22:44:20 손자하고 사돈네 며느리가 집에 와서 며칠 째 같이 지내고 있다. 그리고 어제는 사위마저 와서 한우 고기 구워 놓고 한잔 마셨다. 기분 좋게 취해서 자고 있는데 누군가 흔들어 깨웠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애비야 돈 좀 다고!” “얼매나?” “오배건” 좀처럼 없던 일이다. 봄이면 고사리도 꺾으시고 고추야 들깨야 해서 아들딸들 보태 주기만 하셨지 나한테 손 벌린 적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더 이상 묻지 않고 지갑에서 칠백원을 꺼냈다. “으쩐 일이래요?” “동네 할매들한테 한특 냈다” 한푼도 아까와 하시던 분이 참 별일이다 싶었다. “멘이브로 손자 자랑 하만 밉상이라캐서” “갑자기 무신 손자” “그러니까 니..

가족과더불어 2022.11.04